정금종 사무처장
“제 사무실은 거의 동네 복덕방 수준이죠. 수많은 선수들이 불쑥 찾아와 고충을 얘기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아무래도 제가 선수출신이라 허물이 없는 것 같네요.” 서울시장애인체육회 정금종(사진) 사무처장은 역도선수 출신이다. 장애인올림픽에만 7번 출전했고 4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대기록을 세운 뒤엔 행정가로 변신해 장애인체육 활성화에 일조하고 있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정 처장의 일생은 한국 장애인체육사의 전부이자 한편의 드라마다. 세 살때까지 할머니 손에서 자란 정 처장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진 뒤 재활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우락부락한’ 인상이 역도에 맞는다는 재활원 지도교사의 권유로 역기를 들기 시작했다는 설명. 84년 첫 출전한 LA장애인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열광하는 매스컴 덕분에 잃었던 고모를 알게됐고 ‘정금종’이란 이름도 되찾았다. 이후 그의 28년에 걸친 올림픽 도전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땄고 92년 바르셀로나, 96년 아틀랜타, 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4연패 신화를 이뤘다. 2004년 아테네에선 은메달을, 마흔살이 훌쩍 넘어 출전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선 행운의 동메달까지 거머쥐었다. 체급종목인 역도에서 올림픽 7연속 출전과 4연패 위업을 달성하는 동안 정 처장의 최대 적은 체중이었다. “지체장애의 특성상 감량의 대부분을 상체에서 해야하기 때문에 대회를 앞두고 10㎏이 넘는 몸무게를 빼는 일은 거의 살인적인 고통을 동반했습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이명호 부장은 “후배선수의 금메달 획득 길을 열어주기 위해 일부러 체급을 낮추느라 고통스런 감량을 자처하기도했다”고 전했다. 장애인체육사에 큰 획을 그은 정 처장은 이제 체육행정가로서 또한차례 모험에 나섰다. 더 많은 장애인이 운동을 즐기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2선에서 돕겠다는 것. “비장애인 운동선수는 돈이 안되면 안 뛰고 심지어 20대에 은퇴하기도하지만 장애인에게 운동은 재활이고 사람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장애인에게 운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입니다.” 정 처장은 연금과 포상금을 털어 다솜공동체란 장애인들의 보금자리도 운영하고 있다. 충남 당진엔 10여명이 사는 생활공동체를 꾸리고있고 서울엔 70명이 넘는 장애인이 운동을 즐기는 공간을 운영 중이다. 체육사에 길이남을 업적과 행정가로서의 변신을 이룬 뒤 장애인공동체까지 꾸리고있는 그에겐 ‘국민 역사(力士)’란 호칭이 어울릴 법 하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장애인역도란 척수장애와 절단, 뇌성마비 장애인은 정해진 벤치프레스에서 보다 무거운 역기를 드는 것으로 승부를 겨룬다. 체중에 따라 남녀 각 10체급으로 분류된다. 벤치 위에서 역기를 완전히 들어올릴 때까지 머리와 몸통, 양다리, 발뒤꿈치가 공인용 벤치에 닿아있어야 유효로 인정된다. 가슴 위에서 역기를 튕기거나 팔을 불균형하게 펴거나, 팔을 펴는 도중 역기가 떨어지면 실격처리된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 지적장애는 벤치프레스와 데드리프트, 스쿼트 형식으로 나눠 역기를 든 뒤 중량의 합계를 가지고 승자를 가린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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