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임연은 4세 때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돼 다리에 장애를 갖게 됐다. 초등학교 때 사생
대회나 글짓기대회에서
상을 휩쓸어 화가나 작가의 꿈을 꾸었지만, 장애에 대한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다락방에 올라가 서너
시간씩 분이 풀릴 때까지 울었어요. 건물 옥상에 다리를 하나 걸치고
뛰어내릴까 말까를 여러 차례 했어요.
그런데 ‘이 고비만 넘기면 나중에 좋은 일이 많을 것 같다’는 묘한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살았어요.”
김임연의 돌파구는 스포츠였다. “당시
유일한 장애인 시설인 정립회관에서
운동을 하면서,
서로 감싸고 위로하니 그게 너무 편했어요. 그래서 운동에 전념했죠.”
양궁부터 농구 등 안 해 본 운동이 없지만 ‘꽂힌’ 종목은 사격이었다.
당시만 해도 사격을 하면서 혹독한 훈련과 구타를 견뎌야 했다.
“엉덩이를 하도 맞아 밤에 엎드려서 자야 했어요. 그게 버릇이 돼 지금도 엎드려 자요.”
고교 때까지 일반 대회 출전이
목표여서 장애인 체육을 할 생각은 없었다.
고교 졸업 후 모 체육전문대에 지원했지만 “감히 장애인이…”라는 소리를 교수로부터 들어야 했다.
나중에 김임연이
국제대회에서 이름을 날린 뒤 당시 사격팀 주장이 대신 찾아와 “미안하다”고 했다.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에서 피나는 훈련을 했지만 출전 종목이
없어지는 바람에 다시 3년반을 좌절해야 했다.
그동안에도 머릿속에 사격 타깃의 동그란 흑점이 잊어지지 않았다.
파묻히듯 유치원 보모로 지내다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앞두고
사격하던 친구들로부터 “선발전이 있으니
도전해
보라”는
연락이 왔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 선발됐다.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서 실신하다시피 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지만 링거를 맞으며 출전,
2개의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쓸어 왔다.
2004년 아테네대회까지 올림픽에
연속 출전하면서 금메달 5개를 따냈다.
장애인올림픽과 세계
선수권을 포함해 국제대회에서 획득한 금메달만 50개 가까이 된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