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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일보] ‘이름’얻기까지 피눈물… “스포츠야말로 장애인에겐 돌파구죠”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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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1-01-14 11:28:33 조회 217

 

<사랑 그리고 희망 - 2010 대한민국 리포트>
‘이름’얻기까지 피눈물… “스포츠야말로 장애인에겐 돌파구죠”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 게재 일자 : 2011-01-05 14:33
▲ 김임연은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선수와 지도자 등 앞으로 진로를 놓고 고민 중”이라면서 “장애인들을 위한 일이라면 언제든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곽성호기자 tray92@munhwa.com

‘사랑·희망 전령사’ 릴레이 인터뷰- 장애인선수 권익 앞장 김임연 APC 선수위원장

지난해 12월 열린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종합 3위의 성적을 올렸다.
메달 못지않게 반가웠던 뉴스는 한국 장애인 사격의 간판 스타인 김임연(44·KB국민은행)이
아시아장애인올림픽위원회(APC) 선수위원장에 다시 선출됐다는 소식이었다.
김임연은 중동국가 후보 2명을 제치고 67.3%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중동권의 선수층이 두껍고 입김이 센 탓에 김임연의 재선이 힘들다고 예상된 터였다.
김임연이 다시 4년간 아시아 선수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된 것은 한국 장애인
스포츠계로서는 자랑스러운 성과다. 김임연은 1992년 바르셀로나대회부터 2008년 베이징대회까지
올림픽에서만 통산 금 5·은 2·동 2개를 따냈다.
또한 대한장애인선수위원회 위원장과 대한장애인올림픽위원회(KPC)
부위원장으로 장애인 선수들을 위해 왕성하게 활동해 왔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희망 전령사’로 김임연을 첫손가락에 꼽지 않을 수 없다.

광저우대회 이후 소속팀에서 1주일간 휴가를 얻은 김임연을 지난해 12월30일 만났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김임연은 상당히 의기소침해 있었다.

“모처럼 휴가를 얻어 쉬면서 많은 고민을 했어요.
아직 결정은 못했지만, 소속 실업팀을 이제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다소 충격이었다. 지난 20년간 한국 장애인 스포츠의 ‘얼굴’이었고
장애인 선수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 온 김임연이 아닌가.
더구나 실업팀인 KB국민은행은 16년 동안 몸담아 왔을 뿐 아니라 장애인 선수로서
거의 유일하게 비장애인팀에 들어가 운동해온 남들이 부러워하던 직장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얘기가 벌써 나오고 있잖아요.
많은 분들이 이제 지도자나 장애인들을 위한 다른 길을 가야 하지 않느냐는 말씀도 하고요.
다른 길로 가자면 선택이 필요한데, 은퇴를 하자면 지금 시점에서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고민이 되고 힘들어요.”

큰 대회와 행사가 정리되면서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김임연을 힘들게 하는 시점인 듯하다.
그의 고민 가운데는 우리 장애인 스포츠의 현실이 중첩돼 있기도 하다.

“광저우대회를 앞둔 한 달 전에 혈액암으로 투병해온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장례 등으로 몸무게가 3∼4㎏이나 줄었어요.
대회를 앞둔 선수에게는 치명적이죠.”

그래서인지 김임연의 이번 광저우대회는 국제대회 참가 20여년의 경력 중에
유일하게 ‘노메달’을 기록한 대회가 됐다.
이 또한 ‘선수로서’ 김임연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속팀에 미안하죠. 16년 동안 유일한 실업팀의 장애인 선수였기 때문에 영예도 있었지만 부담도 컸어요.
많은 장애인 선수들을 대표해서 좋은 성적도 내야 하니까요.”

김임연은 이번 광저우대회를 거치면서 “메달이면 메달, 선수위원이면 선수위원에만 전념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둘 다 바라면서 도움은 주지 않는 주변이 원망스럽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그가 앞으로의 진로를 놓고 고민하는 이유들이다.

김임연이 사격에 입문해 이름을 얻기까지 과정은 우리나라 대부분
장애인의 삶이 그러하듯 피눈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포츠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자기 삶의 비전을 열어갈 수 있었다.
그는 “스포츠야말로 장애인들에게 필요하다”고 말을 꺼내면서 눈에 빛을 발했다.

“스포츠가 장애인의 사회 적응이나 스트레스 발산에 가장 좋아요.
유럽 등 선진국들은 장애인 클럽 문화나 동호회가 잘 돼 있어
어떤 운동이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잖아요.
우리는 장애인들이 돈을 내고 운동을 하기도 어려워요.”

김임연은 “한국 장애인 대표선수 중 40세를 훌쩍 넘는 선수가 왜 대부분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사회 변화 때문에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로 인해 장애인이 많이 생기지만 이들을 위한 스포츠 시설이 적어
이들을 스포츠로 인도해 마음을 빨리 정리할 기회를 주지 못해 대부분 술을 마시며 삶을 탕진하다
뒤늦게 마음을 돌이켜 스포츠로 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나이 많은 선수들이 많아요.”

그는 “그동안 장애인들이 힘겨운 투쟁을 통해 그나마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들이 생겨났다”며
“앞으로는 장애인들이 사회 곳곳에 진출해 시스템적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김임연이 꿈꾸는 미래이기도 하다.

김임연은 지금 선수냐, 지도자냐, 학업이냐, 장애인들을 위한 더 넓은 무대냐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다.
뒤늦게 결혼해 낳은 네살배기 아이의 엄마지만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미안함도 있다.
체육지도자로서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온 학업도 대학원 이후 포기해야 했던 회한도 남아 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는 모 정당에서 시의원 비례대표 제의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시안게임 준비를 해야 한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선수로 남는다면 2012년 런던올림픽의 IPC 선수위원 선거 두 번째 도전도 욕심이 난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희망으로 부상하면서 힘이 돼주기도 했지만 적지 않은
부담도 홀로 짊어져야 했던 김임연. 그는 다시 힘을 내고 있었다.

“제가 선택할 방향이 어떤 길이 되든지 장애인들을 위한 길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어요.
제가 많이 사랑받은 만큼 돌려줘야죠. 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늘 많은 분들과 같이 가야 하고 필요하면 앞장서야죠. 제가 나서야 한다면 겁을 내진 않아요.”

인터뷰=엄주엽 체육부 부장대우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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