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다르지 않아요. 적어도 달릴 때만큼은 다르지 않다고요.”
2005년 영화 ‘말아톤’에서 주인공인 자폐증을 앓고 있는 스무 살 청년 초원이의 어머니가 세상을 향해 외친 부르짖음이다. 자신의 세계에 갇힌 초원이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는
마라톤이었다. 초원이가 마라톤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다르지 않음’이었는지 모른다. 소위 일반인과 초원이 사이에 차이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함께 어울려 살기 힘들 정도의 차이는 아니라고. 그저 미미한 차이일 뿐이라고.
봄비가 내려 따뜻한 봄햇살을 가리고, 만개했던 벚꽃이 흩날리던 18일 오후. 전국
각지에서 100명의 어린이가 경기 이천시 신둔면 이천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 모였다. 세상은 이 어린이들에게 자폐 혹은 지적장애라는 이름을 붙였다. 더러에게는
다운증후군이라는 딱지도 달았다. 거추장스러운 이름표와는 별개로 아이들은 함께 모인 것이 무척 신나는
모양이었다. 이날 아이들이 모인 이유는 ‘2011 희망어울림 국가대표 체험’ 행사 때문이다.
한화그룹(회장 김승연)이 후원하고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
미래’(이사장 송자)가 주관했다. 아동들에게 장애인 국가대표훈련시설을 경험하게 하고 체육활동을 통해 소통 기회를 넓혀 주자는 것이 주 목표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대표 꿈을 키울 수 있다면 일석이조.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본격적인 종목 체험 행사 전에 열린
기초체력검사 때부터 이미 즐거운 비명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마르고 체구는 작았지만 운동신경이 좋은 현식(가명)이는 멀리뛰기에서도 윗몸일으키기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옆에서 “와! 잘한다. 한 번 더해”라고 부추기면 어김없이 다시 했다. ‘헉헉’ 힘들어 하면서도 표정만은 즐겁다. 눈이 크고 예쁘장한 수민(여·가명)이는 쭈뼛쭈뼛거리면서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채 열 개도 못하고 그만두지만 배시시 웃는 얼굴이 아침햇살마냥 맑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모든 아이들 옆에는 아이들을 1대 1로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이들은 이날만을 위해 모인 것은 아니다. 평소에도 아이들과 함께 지내 왔다. 길게는 몇 년째 관계를 유지해온 경우도 있다. 이 자리에서는 자원봉사 언니·오빠·아저씨들이 엄마고 아빠다. 못하면 옆에서 도와주고 잘했을 때는 함께 부둥키며 좋아한다. 입사 후 4년간 봉사를 해온 노명호(28·한화폴리드리머)씨는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순수한 미소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봉사는 아이들이 아니라 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기초체력검사에서 전원 통과 결과를 받아든 아이들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스포츠 종목 체험을 시작했다. 서울,
대전, 천안,
구미, 울산, 여수 등 전국 17개 사회복지시설에서 모인 아이들은 평소 태권도,
댄스스포츠, 축구, 배드민턴을 배운다. 이날 체험하는 종목은 평소에는 배우지 못한 생소한 것들이었다. 티볼, 셔플보드, 보치아, 좌식배구, 핸드사이클, 조정 등이다. 휠체어마라톤의 경우 국가대표 선수들이 직접 지도를 했다.
아이들이 관심을 보인 종목은
뉴스포츠인 티볼과 셔플보드였다. 뉴스포츠는 기존의 스포츠를 누구나 하기 쉽게 변환한 새로운 스포츠다. 티볼은 야구형 스포츠지만 투수가 없는 대신 받침대 위에 공을 놓고 친다.
공과 배트가 모두 스펀지여서 부상 위험이 없다. 받침대에 올려진 공을 치기만 하면 되지만 처음 하는 아이들은 쉽게 치지 못했다. 정필(가명)이는 6번이나 기회를 얻었지만 의욕적으로 너무 세게 휘두르다가 결국 받침대만 때리고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병한(가명)이는 한 번 실수한
다음에 호쾌한 스윙으로 주변을 놀라게 했다. 주자가 득점을 하고 아웃될 때마다 희비가 엇갈렸다.
자원봉사자들과 어린이들이 어울려 한 게임에서 어린이들은 출루만 하면 이후에는 무조건 세이프로 인정을 받았다. 처음에는 주춤하던 아이들도 나중에는 먼저 하고 싶어서 앞으로 나섰다. 이선화(24) 중곡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스포츠 프로그램을 하고 나서 아이들이
동기부여나 성취감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셔플보드도 인기였다. 볼링과 컬링을 혼합한 종목인데 막대로 둥글납작한 공을 밀어 숫자가 써 있는
도형에 밀어넣는 게임이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아 하던 아이들도 배운 동작대로 열심히 따라했다. 2007년 시각장애인과 18일간 600㎞ 달리기를 하고 나서 장애인체육 봉사를 해온 장철호(45·서울특별시장애인체육회)씨는 “장애가 있는 아동은 비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릴 때 사고가 바뀌고 적극적으로 변한다”고 강조했다.
행사 끄트머리에 이천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장애인 종합체육시설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이날 이곳이 크고 빛나게 느껴졌던 이유가 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천 = 이화종기자 hiromats@munhwa.com